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숙환으로 83세 일기로 9일 별세한 가운데 그의 빈소가 차려진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근조 화환도 자리를 잡았다.
세 사람은 1998년부터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회장단 멤버로 함께 활동하며 동시대를 풍미한 재계 대표 총수들로 잘 알려져 있다.
10일 김 전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경기 수원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는 전직 대우그룹 임직원을 비롯해 경제계와 정계·문화계 관계자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대우세계경영연구회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부터 공식 조문이 시작됐으며 전·현직 대우그룹 임직원들을 포함해 고인의 넋을 기리기 위한 많은 조문객들이 장례식장을 찾았다.
조문 시작과 함께 각계에서 보낸 조화와 근조 화환들도 속속 빈소 주위를 채워갔다.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조화도 빈소 내부에 자리잡았고 이낙연 국무총리도 근조를 보내 고인을 애도했다.
특히 오전 11시 이후에는 김 전 회장의 별세 소식을 접한 재계 총수들의 근조 화환들이 잇따라 도착했는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보낸 것도 눈에 띄었다.
김 전 회장과 이 회장, 정 회장은 1990년대말 재계 대표 기업인 대우, 삼성, 현대차의 총수로 활동하며 잦은 교류를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이로는 1936년생인 김 전 회장이 맏형이었다.
김 전 회장은 삼성과 현대를 키운 이병철 창업주와 정주영 전 명예회장 등 '1세대 기업인'들과 달리 일반 사원에서부터 시작된 '샐러리맨' 출신의 1.5세대 기업인으로 꼽힌다.
그는 1960년 중견 무역업체인 한성실업에 입사한 뒤 31세 때인 1967년 대우실업을 창업하며 본격적인 경영인의 길을 걸었다. 이후 조선, 자동차, 전자, 증권 등 다양한 산업에 진출하며 1998년에 대우그룹을 재계 2위 대기업으로 키우기도 했다.
1998년에 24대 전경련 회장직에 오른 김 전 회장은 당시 재계를 대표하던 삼성의 이 회장, 현대차의 정 회장과 자연스럽게 네트워크를 쌓으며 동시대를 풍미한 재계 총수로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그러나 1997년 불어닥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와 함께 대우그룹이 유동성 압박에 시달리며 김 전 회장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결국 대우그룹은 1998년 12월에 41개 계열사 중 10개사를 감축하는 강도높은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고 재계 다른 기업들과 '빅딜'도 추진했으나 당시 정부와의 갈등을 포함한 여러 이유로 무산되고 말았다.
결국 1999년 8월 대우그룹은 워크아웃을 신청하며 사실상 해체됐고 그해 11월 김 전 회장도 총수 자리에서 물러났다. 수조원대 분식회계 및 횡령 혐의를 받은 김 전 회장은 5년 이상 도피 생활을 하다가 2006년 징역 8년6개월,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9253억원을 선고받았으나 2008년 1월 특사로 사면받았다.
김 전 회장이 도피생활을 마치고 2005년 입국해 검찰 조사를 받을 당시엔 이건희 회장이 선처를 희망한다고 발언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05년 6월 서울 장충동 호텔신라에서 열린 전경련 월례 회장단 회의에 참석했던 이 회장은 당시 개인적 생각임을 전제로 "(김 전 회장이) 젊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것은 사실"이라며 "이를 참작해서 선처해주길 바랄 뿐"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 전 회장의 장례식 첫날인 이날 오후 3시까지 빈소에는 정·재계와 문화계 등에서 여러 조문객들이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정계에서는 김동연 전 부총리를 비롯해 주호영·조원진 현직 의원과 홍사덕·강용석 전 의원 등이 빈소를 방문했다.
재계에서는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아들인 정용진 부회장을 비롯한 임원들과 함께 장례식장에 들렀다. 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큐셀 부사장 등도 빈소를 찾았다. 이날 오후에는 해외 출장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대신해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이 빈소를 들를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기업 총수들이 보낸 근조 화환들도 눈에 띄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각각 조화를 보내 고인을 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