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어가 아닌 오로지 연기만을 바라보고 연기를 해야하는 게 바로 배우다."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대왕(한석규)과 그와 뜻을 함께했지만 한순간 역사에서 사라진 장영실의 숨겨진 이야기를 다룬 사극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이하 '천문', 허진호 감독, 하이브미디어코프 제작). 극중 장영실 역을 맡은 최민식(57)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에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데뷔 이후 '쉬리'(1999), '파이란'(2001), '취화선'(2002), '올드보이'(2003), '악마는 보았다'(2010),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2), '신세계'(2013), '명량'(2014) 등의 작품에서 관중을 압도하는 연기력을 선보이며 한국 영화 역사에 남을 수작들을 연이어 남겨온 최민식. 말이 필요 없는 충무로 대표 배우인 그가 이번 작품에서 조선의 역사에서 사라진 천재 과학자 장영실로 돌아와 전 세대를 아우르는 깊은 울림을 선사할 예정이다.
극중 그가 연기하는 장영실은 조선의 하늘을 천재 과학자. 관노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과학 지식을 지닌 그는 조선의 시간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과 함께하며 각종 천문의기를 발명해낸다. 미천한 신분의 자신의 재능과 노력을 알아봐준 세종를 진심으로 섬기는 장영실. 세종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이자 든든한 벗인 그는 충정을 넘어 세종과 진실한 우정을 나눈다.
이날 최민식은 완성된 영화를 본 소감에 대해 묻자 "완성된 영화를 본다는 건 항상 아쉽다. 항상 욕심쟁이니까 항상 아쉬운 마음은 있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 안에서 이것저것 잘 주어 담은 느낌이다"며 유쾌하게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천문'이라는 작품에 대해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다가가는 두 사람이 있다. 세종과 장영실. 큰 꿈에 대하여 한 명은 목표를 세우고 한명은 조력자이지 않나. 그 목표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파생되는 두 인물의 감정들이 좀 더 디테일하게 표현되기를 바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외형적으로 아는 역사적 프레임이 반복된다는 건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천편일률적인 사극 이야기가 아니길 바랐다. 우리는 '천문'을 통해서 집중하고 싶은 건 달랐다. 안여 사건 이후로 장영실이라는 인물이 사라졌는데, 그것의 의문에 대해 집중하고 장영실과 세종의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집중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최민식은 극중 세종과 장영실의 감정선에 대해 "영화라는 건 어떤 개인의 의견만으로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공통된 의견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두 사람의 미묘하면서 치열하면서도 서글프면서도 애잔한, '애증'을 표현했으면 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편으로는 질투가 있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주 미묘한 갈증이나 애증 감정이 상상이 되더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군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감정의 기복이 작품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미운 정 고운 정을 더 살렸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며 감정 표현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민식은 '천문'이라는 영화에 설득될 수밖에 없었다며 "의견 개제는 치열하게 하되 수용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놓고 해야 되는 게 영화라는 작업이다. 그게 되어 있지 않고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안 된다. 그런 과정을 무시하면 내가 연출을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작품에서는 연출자의 생각과 의중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천문'에서 최민식은 최근 작품에서 보여줬던 묵직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와 연기와 힘을 뺀 결이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연기를 보여주며 눈길을 끈다. 이에 대해 최민식은 "항상 새로운 시도는 기분이 좋고 재미있다. 카리스마를 강조하는 역할을 많이 했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장영실이라는 인물의 순수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늘을 보고 공상하고 꿈을 꾸는 그런 인물의 순수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TV에서 로봇에 대한 엄청난 권위를 가지고 계신 세계적 과학자 분이 로봇에 대해 강의를 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그 모습이 천진난만 해보이시더라. 그런 분들은 정말 순수하고 천진난만하시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과학에 대한 장영실의 열정도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극중 장영실에 대해 '명량'에서 연기했던 이순신과 비교해 설명했다. "충무공의 경우는 정말 거대한 환란 속에서도 풍전등화 앞에 놓여있었던 인물 아닌가. 아주 절박한 심정이었을 거다"며 "장영실은 명나라와의 정치적 관계 같은 것은 잘 알지 못하고 큰 관심도 없었을거라 생각했다. 이 사람은 오직 세종만 바라보는 사람이었을 것 같다고 파악했다. 정치적 역학 보다는 과학자로서 과학에 대한 열정과 세종에 대한 충성심만 가득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장영실 역의 캐스팅 과정에 대해 묻자 최민식은 "캐스팅 될 때 허진호 감독이 저와 석규에게 두 사람이 세종과 장영실 중 알아서 정하라고 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이어 "석규에게 '너 뭐할래' 라고 했는데 석규가 세종을 하겠다고 하더라. 제가 '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을 했었는데 또 해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또 다른 세종을 표현해 보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서 장영실을 하게 됐다. 저는 '천문'이 아니라도 석규랑 할 수 있는 작품이라면 무조건 했을거다"고 말했다.
앞서 한석규와 함께 영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이전에는 없었냐는 질문에 "성사 될 뻔했다가 제작이 되지 않은 작품도 물론 있다. 그리고 사실 '올드보이'에서 제가 박찬욱 감독에게 지태가 맡은 우진 역에 석규를 추천하기도 했다. 그런데 불발돼 아쉬웠다. 한석규가 연기한 우진도 너무 보고 싶더라"고 말했다.
이어 인터뷰 내내 한석규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던 최민식은 "한석규의 이름만 나와도 웃음이 번지는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당연히 좋지 왜 안 좋겠냐. 대학교(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후배이자 직속 쫄따구 아니냐"며 농담을 던져 좌중을 폭소케 했다.
그러면서 "석규와는 의견의 부딪히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다만 석규가 술을 못한다. 원래 석규가 술을 한 잔도 못했다. 대학교 때는 석규가 맥주 한 잔 소주 한 잔 먹으면 119를 불러야 되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맥주 3잔까지 먹게 됐다. 아주 장족의 발전이다"며 "술 먹을 때마다 '괜찮아?' '자 숨쉬어봐' 이러기도 했다. 석규는 대학교 때와 지금과 진짜 똑같다. 테이프 늘어질 것 같은 말투도 그렇고 느긋함도 똑같다. 오죽하면 대학교 때도 제가 석규 만나면 '어르신 나오셨어요?'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자아냈다.
최민식은 이날 인터뷰에서 자신의 주연작인 '명량' 5년 동안 역대 한국 영화 흥행 1위 기록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대한 기분을 묻자 "솔직히 말해 추억에 취해 살진 않는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이어 "사실 그때의 영광은 다 잊었다. '명량'을 하고 나서 세 작품을 연달아 말아먹지 않았나. 심지어 저보고 국밥 배우라고 하더라"라며 "사실 저는 흥망성쇠에 대해 그렇게 흔들리는 편이 아니다. 사실 그걸 신경 쓰다 보면 살 수가 없다. 사실 스코어에 연연하면 이 일을 오래 할 수가 없다. 물론 아주 자유롭진 않지만 덜어내려고 많이 노력한다. 오로지 지금 하는 작품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후배들에게도 관객수에 대한 주판알을 튕기지 말라고 한다. 연기를 돌아봐야지 관객수를 돌아보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석규의 친 형님이 '연기에서 돈 냄새가 나면 안된다'고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연기를 잘 하는게 배우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민식은 영화계 고참 선배로서 한국 영화의 부흥에 책임감을 느낀다고도 말했다. 그는 "석규와 그런 이야기도 했다. 우리가 뭉쳐서 촬영했던 '넘버3'나 '쉬리' 같은 작품들이 나왔을 때, 언론에서 흔히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라고 말했던 시대, 그때에 정말 다양한 색깔의 감독과 작품이 있었던 그때를 다시 꽃피워야 하지 않냐는 이야기를 했다. 그때의 르네상스를 다시 꽃피워서 우리가 뉴 코리안 시네마를 이끌어봐야 하지 않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며 "가장 중요한 건 다양한 영화가 나오는 거다. 공산주의 사회도 아니고 획일화된 영화만 나오는 건 많이 안된다. 다양한 영화가 나오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나 석규, 그리고 (송)강호도 그렇고 고참이 됐으니 그런 걸 이끌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천문'은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봄날은 간다'(2001), '외출'(2005), '행복'(2007), '호우시절'(2009), '위험한 관계'(2012), '덕혜옹주'(2016)를 연출한 허진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최민식, 한석규, 신규, 김홍파, 허준호, 김태우, 김원해, 임원희 등이 출연한다. 오는 26일 개봉.